주인장 소개.
2011년, 쓸만한 부품이 되느니 쓸모없는 완성품이 되기로 마음먹다.
늘 나의 관심은 평생을 열심히 월급쟁이로 열심히 살아도
만족할 만큼 즐거운 생활도 못보내고 만족할 만큼 부유한 생활도 못보내고
그나마 이것마저 안하면 이사회에서 사람구실도 하기 어려운
비효율의 내 젊음을 어떻게 남들보다 조금 나은 가능성을 100%활용하여
내 하고싶은 일을 하며 어느정도 명성을 얻어 꽤 유명해지기도 하고
월급쟁이로서는 벌 수 없는 돈을 벌며 살 수 있는지에 집중이 되었었다.
2010년 초, 고향으로 돌아와 안정된 직장생활을 하며 1년을 월급쟁이로 살아도 그럭저럭
괜찮게 살 수 있단 생각을 하며 아무것도 못했는데...역시 안락함은 발전의 적이라 했던가..
한국의 주커버그가 되겠다는 꿈을 포기하고 안락한 회사생활에 길들여질 때 쯤,
소셜네트워크 라는 영화한편이 나의 머리를 다시 움직이게 만들었다.
안락한 생활에 젖어 살면 분명히 인생에 손해이다.
안락하게 살다 보면 반드시 다시 뭔가에 도전하며 사는 생활로 되돌아오기 때문이다.
되돌아 와 보면 그 시간이란게 아깝기도 하고 1년을 그렇게 보냈다면 나이한살이란 부담도 무시할 수 없다.
나는 사업이란 가능성과 리스크가 뒤죽박죽인 미지의 세계에 기꺼이 뛰어드는 미국 젊은이들을 동경한다. 한국 사회에서는 사업이란 시작하면 일단 대부분 망하는 것이고 한번 망하면 회생이 불가능할 정도로 많은 것을 잃게 되는것이라는 인식으로 안정을 원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직장생활을 잘 하거나 좋은 회사에 입사 하는 것이, 또는 가장 안정적인 공무원이 되는것을 목표로 삼고 열심히 공부하는 것이 누구에게나 중요한 임무나 의무가 되어 있다.
그러나 미국은 어떠한가, 물론 미국에서도 공부를 잘하고 열심히 한 사람이 대우받는 것이 사실이고 더 많이 배우고 열심히 한 사람이 더 나은 대접을 받아야 함이 마땅하다. 그러나 미국이란 나라는 작은회사를 여기저기 짧은기간동안 옮겨다니는걸 이상하게 여기지 않는다. 직업을 쉽게 바꾸고 리스크에 쉽게 도전하며 사업을 하다 실패하더라도 다시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 잘 되어있다.
또 아이디어만으로 큰 자본없이 성공한 사례가 지천에 널려 있으며 누구든 하면되고 해서 안되면 다시 하고, 될때까지 하다 대박도 잘나는 자신감이 가득한 곳이다.
나는 아이디어가 좋은편에 속한다. 비즈니스를 공부해서 그 아이디어를 체계적으로 상업화 할 능력도 있으며, 프로그래머로 일 했었기 때문에 어느정도 실물로 구현도 된다. 광고홍보학을 전공했기 때문에 마케팅이나 브랜딩, PR, 판촉 전략도 만들 수 있으며 인터넷 사업 수익모델의 핵심인 광고를 위한 플래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이만하면 Social Network Service를 하나 만들어 마크주커버그 처럼 한방에 도전해 볼만 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지금 잘다니고 있는 안정된 회사를 그만둘 생각은 조금도 없다. 지금회사에서 받는 스트레스와 고통은 나로 하여금 빨리 행동하게 만드는 촉매같은 존재이다. 느슨하고 시간이 많고 여유로우면 특히 하루종일 시간이 날땐 아무것도 하지 못한 날이 훨씬 많았던 것이 내 경험이었다. 나는 늦은시간 쪼개서 성공할 것이다.
위에서 나의 장점을 이야기 하긴 했지만 사실 어느것 하나 전문적으로 잘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렇다고 나는 위의 분야에 허접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엄청난 결과를 얻어 낼 수 있는 풋내기이다. 전문가라면 매킨지에서 컨설팅이나 하고 있겠지, 너무 많이 알면 성공에 도전하기도 힘들다. 난 슬램덩크라는 만화에서 강백호같이 자세나 방법이 정석은 아니지만 열심히 풋내기 슛을 쏴 볼 것이고 성공시킬 것이다. 내 능력 범위 안에서 소셜네트워크 회사를 조직하고 사업과 제품을 기획하고 사람을 모으고 사이트를 만들고 키우고 상업화 하여 망해도 아쉬울것 없는 연습을 계속 할 것이다. 삼십대 중후반이 될 때까지 서너번 말아먹고 다시하고 반복하다 보면 괜찮은것 하나 안나올까. 안나와도 상관없다. 난 직장도 잃지 않을 것이고, 많은 도도 잃지 않을것이고 자기계발에 사용했어야 할 시간도 아주 유익하게 썼기 때문이다. 또 도전하면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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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의 마지막날인데 아직도 삼십대가 되었다는 것이 실감이 안나네요
2009년 한해는 정말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연초에는 생각도 하고 싶지 않은 최악의 몇달을 보냈고 중반에는 서울 충정로의 한 신문사로 이직하였습니다. 2008년 큰기대를 걸고 시작한 FX사업을 접고 다시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왔습니다.
2009년 역시 지난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보내기에 너무 아쉽고 또다시 새해는 설레임반 두려움반으로 오고 있네요. 12월에 그나마 마음을 새롭게 잡고 블로그를 다시 시작하면서 글 몇개 남긴것 외에는 허망하게 흘러가 버린 한해였던것 같습니다.
내년에는 여기에 또 어떤 글을 남길까요?
개인적으로 바라는 내용으로
2. 운동을 열심히 하여 배가 쏙 들어갔다.
3. 쓰고 있는 책도 이제 절반을 넘어 고지가 보인다.
4. 가고 싶었던 대학원에 합격했다.
7. 다시 작곡과 녹음을 시작했다.
8. 내 능력의 100% 모두를 활용했던 한해였다.
9. 지금의 골방을 벗어나 조그마한 집을 장만했다.
10. 2008, 2009년의 고통들이 올해를 위한 것들이었다.
1년이 지나 2010년 마지막 날, 한해를 돌아봤을 때 이 연두색박스를 보고 부끄러워 지지 않길, 힘들었지만 행복한 한해였노라 하며 미소짓길...
마지막으로 20대때 가장 존경했던 형님의 5~6년전 글을 잊지 않기 위해 남겨봅니다.
『작년 한해 잘 마무리 했는지 모르겠지만 다 지나간 일들일 뿐이니
다가오는 새해에는 꼭 목표를 세워 매진 할수 있도록들 하시게.
목표없는 삶처럼 기구한 운명도 없으이.
작금의 환경이나 상황이 때로는 힘들고 어렵게 느껴질지 몰라도
도전할 수 있는 건강한 육체와 정신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하고 또 감사하게나.
젊은이들 보게나.
정신똑바로 차리고,계획을 세워서 살게. 물에 물탄듯, 술에 술탄듯 떠밀려서 살진 말게.
무언가에 도전할 수 있는 삶 . 얼마나 피를 끓게 만드는가. 그 기회마저 보장 받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는걸 명심하게.
늙은이 잔소리가 길어질거 같아서 여기서 그만하이.
추신>wow. 넘 열심히 하지 말게.
자네들이 그걸로 밤샐때 자네들 연봉도 조금씩 날샌다네. 』
2009년 마지막날에..
1. 무수한 소녀팬들을 거느린 뮤지션.
(사진에서는 Dream Theater 의 The Spirit Carries on 이란 노래를 열창하고 있음..
감동의 도가니에빠져 정신못차리는 소녀떼들..)
2. 온 세계를 돌아다니며 일하고 사랑하고 놀고 싶은 20대 후반의 소년 =)
3. 금융공기업 출신 외환딜러..
2008년 설연휴는 5일이나 되었습니다.
고향에서 서울로 돌아오는 기차표를 구하지 못해 설날 당일날 올라오게 되었습니다.
퀘퀘한 자취방에 돌아오자 마자 메일을 확인했습니다.
We are sorry .... 어쩌고 저쩌고 라는 제목의 꼬부랑말이 가득한 메일을 읽었습니다..
난생 처음으로 시험에 떨어졌습니다. 그것도 2007년 1년을 꼬박 투자하고 학원비랑 응시료만 해도 그때 한달 월급정도나 들어갔던 시험이었습니다. 앞이 깜깜해 졌습니다..
저는 모 금융공기업의 전산부서에서 근무하고 있었습니다. 사무실 직원들 중 10여명이 같은 시험을 준비하였는데 몇명이 합격하고 몇명이 탈락했는지, 누가 합격하고 누가 탈락했는지 갑자기 머릿속이 복잡해 졌습니다.
행내 시험이나 인사평가에 항상 중간은 했었던 저로썬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 뿐이 아니었습니다. 약 2개월간 하루에 두세시간만 자며 공부했던 미국CPA 시험은 또 어떻게 해야 할지 너무나 막막했습니다. 설연휴 내내 술에 취해 잠도 오지 않았습니다.
연휴 마지막날, 어지러운 며칠을 정리하고자 CPA 스터디 그룹의 스터디일정에 맞춰 마음을 추스리고 나갔습니다.
제가 속해 있었던 CPA 스터디 그룹에는 시중은행에서 인사를 담당하고 있는사람, 삼성전자에서 해외영업하는 사람, KT에서 재무관리하는 사람 .. 모두 한국에서는 최고라 할 수 있는 직장을 때려치고 외국에서 뭔가 다른 일을 해 보고 싶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그 사람들 사이에서 저의 생각과 마인드가 조금씩 변하고 있었습니다. 우리의 공통점은 내 미래가 내 직장상사와 같아지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잘나가는 회사에서 15년정도 죽도록 충성하면 팀장정도(죄송합니다 팀장님^^)의 위치에 올라 1억원 정도의 연봉을 받게 됩니다. 그때 나이는 마흔이 훌쩍 넘어 있겠지요.. 그나이에 연봉 1억이면 적은 연봉은 아닌것이 확실합니다. 그러나 다른 사람에 비해 조금 더 받는 것일 뿐 그들이 그자리에 오르기까지 못쉬고 못놀고 못즐긴 30대는 그 연봉몇푼과는 바꿀수가 없다는데 모두 동의했습니다.
그렇다고 쉬고, 놀고, 즐겨가면서 더 적은 연봉을 받고자 했던 것은 더더욱 아닙니다. 욕심이 지나친것 같지만 충분히 쉬고, 놀고, 즐기면서 돈까지 충분히 벌 수 있는 낙원을 찾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신이내린 직장도, 국내 최고의 대기업도 해 줄수 없는 것을 미국CPA 합격증 쪼가리가 해 줄 수 있는것은 아니었습니다. 각자 해외에서의 펼칠 계획은 다 가지고 있었고 CPA합격은 그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저역시 CPA 에 합격하면 미쿡이나 호주로 건너가 영주권을 받고 여러가지 일들을 구상해 두었습니다.
이 때 우연히 FX마진거래를 만났습니다.
첫 모의거래에서 3시간만에 840불을 벌었습니다. 세상에 이렇게 쉽게 돈을 벌 수 있는게 또 있을까요?
840불이면 월급의 약 1/4 이므로 1주일간 아침아홉시부터 밤 열시까지 죽어라 일하고 부장님 눈치 살피며 퇴근하여야 벌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허탈함이 밀려왔습니다. '1주일 급여를 3시간만에......'
게다가 컴퓨터만 있으면 세계 어디서든 거래가 가능하다는게 너무 매력적이었습니다.
떨어진 감사사시험, 늦은 퇴근후에 고생고생하면서 공부해야 했던 CPA시험 ..무척 큰 짐이었던 이것들을
'이제 잊어도 된다~~' 라는 생각이 저를 더 성급한 결정을 하게 만들었습니다.
우여곡절끝에 주위 사람들을 설득하여 사표를 쓰고 전업 FX 트레이더가 되었습니다. 하필 이 일을 선택한 것이 잘한 짓인지는 4개월이 지난 지금도 모르겠지만 내년쯤 되면 모든것이 확실해 질것 입니다.
내년 이맘때면 오스트리아를 거쳐 폴란드에서 휴가를 보내며 동유럽인들의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표정과 여유있는 생활을 배우고 있기를 바라며 특별했던 20대 마지막 해 이야기를 마칠까 합니다.
e-mail : vulcanus 골뱅 naver.com
